프레스룸

<모란봉 클럽> / 86회 / 20170506

2017.07.04

<모란봉 클럽>


방송일시 : 5월 6일 토요일 밤 11시 / 86회


86회 긴급 소환 명령! 김 씨 일가를 위한 북송의 충격실태


출연: 최영하(5차례 북송), 조현(평남 축산과 고위간부), 김진수(국가안전보위부 출신),      이재근(납북 후 대남 공작 훈련), 김영천(중앙당 38호실), 김일국(최연소 중앙당 간부),        이유미(북한 장사의 神), 한진명(前베트남주재북한외교관), 박수애(북한 리듬체조)          김지영(김일성종합대학), 김가영(상위 1% 엄친딸), 이윤걸(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대표)    김은주(남북 통합 예술인)     / 안지환, 한영, 성대현, 김원효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탈북 과정 중 5차례나 북송당한 최영하가 출연해 북송 위험 세 가지 요소를 밝혀 궁금증을 자아낸다. 북송 위험 요소 첫 번째는 ‘측근의 배신’이라 말하는 최영하는 뒤통수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밝힌다. 5번의 북송 중 두 차례 모두 주변의 신고로 북송을 당했다고 하며 중국에서 일할 당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신고뿐이었다고 전한다.


북송 위험 요소 두 번째는 ‘재수 없는 친구를 조심해야 한다’고 최영하는 자신을 북송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는 바로 모란봉클럽 북송의 아이콘 이유미라고 말해 녹화현장을 들썩이게 한다. 최영하는 “중국 감옥에서 이유미를 처음 만나 친분을 쌓은 후 중국에서 번 전 재산을 서로 나눠 가질 만큼 각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북한에서 헤어졌던 두 사람이 중국 연길에서 재회한 후 이유미의 제안으로 반가운 마음에 식당을 갔는데, 이유미를 지켜보고 있던 중국 식당 주인의 신고로 만난지 3시간 만에 북송당했다. 처음에 자주 북송된 이유미 때문에 잡혔다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후에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밝힌다. 한편, 이유미는 탈북 과정 중 총 10차례의 북송을 당했다고 밝혀 다시 한 번 모란봉클럽 내 최다 북송 회원임을 증명한다.


북송 위험 요소 세 번째는 바로 ‘오지랖’이라고 탈북자 신분으로 은둔생활을 하지 않고 오지랖으로 북송이 된 적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인이 데리고 온 사람에게 위조여권을 만들어 준 게 발각되면서 북송당해 본의 아니게 단순 탈북이 아니라 남한행의 주동자가 된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최영하는 여러 번 북송되던 와중에도 중국에서 직접 가게를 차려 사업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족으로 속이고 연변 방송까지 출연했다고 전해 모두를 놀라게 한다.  


▶축산과 고위간부 조현, “김 부자의 먹거리를 위해 헬기까지 동원?!”
김부자 전용 동물 농장인 ‘주석목장’이 위치한 평남 축산과 고위간부 출신 조현이 모란봉클럽에 출연해 김 부자를 위한 기상천외한 동물 북송에 대해 낱낱이 공개한다. 조현은 김 부자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전 세계 어디든 가서 동물들을 데리고 온다고 말하며 바로 공수해야 하는 희귀동물은 김 부자 전용기나 헬기를 동원해 동물들을 운반한다고 덧붙인다.


또한, 김부자를 위한 동물들을 운반할 때 역시 특별하게 신경을 써야 해 달걀을 가져오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기도 하고 혹여나 달걀이 깨질까 품에 안고 와야 할 정도라고 말하며 특히 해외에서 동물을 공수할 경우 담당자가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조현은 김일성은 참새, 당나귀, 꿩고기를 선호하고 김정일의 경우 많은 동물 가운데 특히 말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김정일은 말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타는 것 모두 좋아했기 때문에 금액에 상관없이 경기에서 우승한 말을 사들였다고 밝힌다.    


▶납치 되어 30년 간 북한에 살았다! 목숨을 위협하는 간첩 훈련!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남파 공작 목적으로 30년간 북한에 피랍된 이재근이 출연한다. 이재근은 1970년 4월 29일 새벽 2시, 산둥반도 쪽으로 고기잡이를 나섰다가 갑자기 북한군이 들이닥쳐 납북됐다고 전하며, 북한군에게 포위당한 것을 발견한 한국 호위함대가 추격했지만 이미 국경을 넘어 손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배를 타고 있던 27명 중 선별을 통해 8명만 북한에 억류되고 나이가 많거나, 학력이 좋지 않은 나머지는 돌려보냈다고 당시 상황을 말한다. 이후 평양에 있는 중앙당 정치학교에 입학해 간첩 양성에 필요한 격술, 납치, 살인 훈련 등을 받았다고 말하며, 그중 가장 힘들었던 훈련으로 24시간 수영을 꼽았다. 실제로 바다에서 아무 장비 없이 수영하기 때문에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편, 그는 출신성분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전해 주변을 놀라게 한다. 마침 식량 대란이 와서 보위부의 감시가 약해졌고, 그 틈을 타 아들과 아내를 먼저 탈북시킨 후 간첩훈련을 받았던 경험을 되살려 쉽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