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룸
<모란봉 클럽> / 91회 / 20170610
<모란봉 클럽>
방송일시 : 6월 10일 토요일 밤 11시 / 91회
북한 상위 1% 예술 인재 양성 프로젝트 편
출연: 문성광(조선인민군 군악단) 고정희(평양학생소년궁전 영재) 김송연(소학교 무용 교사)
김철웅(북한 피아니스트) 김일국(최연소 중앙당 간부) 이유미(북한 장사의 神)
김지영(김일성종합대학) 박수애(북한 리듬체조) 김가영(상위 1% 엄친딸)
최신아(함경북도예술단무용감독) 한서희(인민보안성 협주단) 오영희(왕재산경음악단)
이광성(금성고등중학교) / 패널 - 안지환, 한영, 성대현, 신아영
▶북한 상위 1% 예술 인재 양성 프로젝트!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91회는 각 분야의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인 만큼 초반부터 긴장감이 팽팽했다. 외모가 출중한 것으로 알려진 인민보안성 협주단 출신의 한서희를 비롯해 하나밖에 없는 조선인민군 군악단 출신 문성광, 김부자의 음악단으로 알려진 왕재산경음악단 출신의 오영희 등 예술 엘리트들이 본인들의 재능을 뽐내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장구하나로 세계무대까지 섰던 이광성의 현란한 장구 연주와 조선인민군 군악단 출신의 문성광의 심금을 울리는 색소폰 연주는 모든 출연자들의 기립박수를 얻었다.
실력자들이 모인 가운데 특히 북한에서 예술인 양성에 힘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함경북도 예술단 무용 감독 출신의 최신아는 <초강력 세뇌 비법>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설명으로 답을 대신했다. 북한에서는 예술이 곧 정치 사업이라고 운을 뗀 최신아는 중앙당에서 나오는 과제는 예술인들에게 먼저 내려온다고 했다. 후에 예술인들은 그 콘셉트에 맞춰 작품을 만들어 공연을 한다는 것인데 예술로 사람들을 선동하면 그것은 강력한 힘이 작용하여 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광, 광산에 관한 공연으로 목표 석탄 생산량을 인민들에게 선전선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허리에 밧줄을 매달고 현장에서 일하는 기쁨을 표현한 것은 건설현장에 관련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500:1이 가능해?” 평양학생소년궁전 영재 고정희
북한의 최고급 특기생 양성기관인 평양학생소년궁전 출신인 고정희는 <500:1이 가능해?>라는 키워드로 궁금증을 자아냈다. 12살에 궁전선생님이 학교로 찾아와 소년궁전으로 학생들을 뽑아갔는데 당시 한 학급이 50명이었고 한 학년에 12학급으로 600명이었던 학교에서 전교생 중 고정희를 포함 5명을 소년궁전으로 뽑아갔다는 것. 그러므로 500:1의 경쟁률을 뚫고 고정희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 다니게 된 것이다. 이에 김철웅은 덧붙여 예체능 인재양성을 위한 최고급 과외학교로 전국에서 예술적으로 뛰어난 학생들을 모아서 만든다고 말했다. 북한의 여러 회원들은 김일성의 아이들 사랑으로 소년궁전의 이름에 걸맞게 평양소년궁전의 건물도 최고급으로 지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각자의 출신 학교와 예술단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던 김지영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리를 해주겠다며 나섰다. 장구영재 이광성이 나온 학교이기도 한 금성고등중학교는 예술 영재를 발굴하여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이며 이에 평양소년학생궁전은 추가로 특별지도를 받을 수 있는 과외기관이라고 설명했다. 금성고등중학교는 한국의 고등학교 과정까지이며 이곳을 졸업하게 되면 평양무용대학이나 인민보안성협주단, 조선인민군 군악단에 뽑혀가게 된다는 것. 그래도 모든 예술인들은 최종목표로 김부자 악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며 왕재산경음악단, 모란봉악단, 보천보전자악단, 은하수관현악단이 그 예라고 설명해주었다.
평양소년궁전에서 가야금과 바이올린을 특별지도 받은 고정희는 평양소년궁전의 양성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오후가 되면 버스로 소년궁전으로 이동, 김일성 동상에 인사로 소년궁전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교육 방법에 대해 예로 바이올린으로 하나의 곡을 연주하기 전 박수를 치며 한 소조의 아이들이 모두 그 리듬을 외우고 계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청음학습을 시킨다고 한다. 그러한 과정을 바이올린을 한 번도 연주하지 못 한 채 3개월을 보냈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또한 4면이 거울로 된 방에서 바이올린을 잡는 자세와 발의 모양까지도 똑같이 만들어야 것까지 배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가영은 이러한 북한 어린이들을 예술인으로 육성하기 위해 조기교육이 많다고 답했다. 북한에서는 돌이 지난 무렵부터 선전선동을 위해 예술적인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력의 예로 본인이 유치원 선생님을 할 때 점심시간에 도시락 통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는 아이의 부모에게 드럼을 권했던 이야기를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설주누나의 남한 댄스사랑” 금성고등중학교 장구영재 이광성
<설주누나의 남한 댄스사랑>이라는 키워드에 모두의 관심을 이끈 이광성은 금성중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선배 리설주가 남한의 국정원 TV로 김정은의 옆에 아내로 서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사연을 전했다. 실제로 보면 귀티가 난다는 리설주와 여 중창 소조에서 골반댄스를 함께 배웠던 이야기를 하며 본인에게 일본에서 샀다는 장난감도 선물했다고 밝혀 모두의 놀라움을 샀다. 김정은의 아내가 될 사람인 것을 알았냐는 질문에 이광성은 당시에는 몰랐었지만 남들과는 항상 다른 길로 등교를 했던 것으로 보아 그때부터 특별 관리를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리설주가 금성중학교 졸업 후 은하수관현악단에 진출한 것처럼 김부자의 대표 악단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는 김지영은 <나는 김정일의 딸을 임신했다?!>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나와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에 김지영은 본인이 다니던 대학의 간부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아내는 김정일이 아끼는 은하수관현악단의 배우였는데 김정일이 그녀에게 딸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딸을 낳아 본인처럼 예술가로 키우라는 지시를 하였던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 여배우는 딸을 낳았고 그녀는 국가에서 계속 예술을 해야 하니 남편이 딸이 5살 되던 해에 독일로 함께 피아노 유학을 떠났다고 전해 그 아이가 김정일의 아이인지 부부의 아이인지 의아했던 이야기를 밝혔다.
▶“사망선고보다 두려운 하반신 마비” 소학교 무용교사 김송연
아버지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했다는 김송연은 항상 엄격했던 아버지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달리기와 줄넘기를 시켰던 아버지는 ‘무용수는 살이 찌면 안 된다‘며 국도 먹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중학교 때 예술대학에 입학했지만 아버지의 토대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는 일들이 있었고 인민군 협주단으로 군복을 입어보는 게 꿈이었지만 좌절되었지만 환경을 극복하려고 이를 악물고 연습하던 김송연의 무용수 인생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콩쿠르를 앞두고 열악한 시설 속에서 욕심내어 연습을 하다가 착지를 잘못해 꼬리뼈를 다치게 된 것. 당시에는 괜찮았지만 3개월 뒤에 갑자기 허리가 찌릿하여 주저앉았더니 그 뒤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무용수의 다리가 하루아침에 움직이지 않게 되어 사망선고와 다름없었고 중국에 있던 고모에게까지 연락을 하여 좋다는 약도 먹어보고 곰에서 나오는 열주머니로 만든 곰열주사까지 맞아봤다고 한다. 당시 하루 종일 울었던 김송연에게 아버지는 더 강하게 걸음마를 다시 시키고 조금씩 걷게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김송연은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1년 뒤에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걷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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