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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다큐 마이웨이> / 48회 / 20170615
<인생다큐 마이웨이>
방송일시 : 6월 15일 목요일 밤 9시 50분 / 48회
배우 신성일
15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한국 영화사와 어깨를 나란히 해온 이 시대 최고의 청춘스타, 뉴 스타 넘버원 배우 신성일의 인생사가 공개된다.
어느 덧 나이 여든 하나, 데뷔 후 57년차를 맞이하며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배우 신성일은 1960년대~70년대 한국 영화사의 황금기와 함께 호흡해 온 인물이다. 반 세기가 넘게 작품 활동을 하며 총 출연 작품만 해도 500여 편 이상 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영화감독 김수용은 “그만한 얼굴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어요”, 영화감독 이두영은 “톱스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남녀 통 틀어서 아마 신성일 씨 일겁니다”, 영화감독 고응호는 “(신성일 씨 출연 영화가) 한 500여 편을 했어요. 그전에 흑백시절에는 청춘영화로서는 아마 신성일 씨 따라갈 사람이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전성기 시절 그가 출연했던 영화는 대부분이 히트작으로 이어지며, 덩달아 그 주제곡 역시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표적인 곡들 은 <맨발의 청춘>, <하숙생>, <동백아가씨>, <초우>, <이별>, <별들의 고향>, <안개>, <떠날 때는 말없이>, <파란 이별의 글씨>, <새벽길>, 등이 그의 영화와 함께 히트가 됐던 노래들이다.
신성일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대구 명문 경북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 서울대 진학을 꿈꾸어 왔지만, 어머니가 사금융 사기에 휘말리며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도피하다시피 올라온 서울에서 처음 배우의 꿈을 꾸게 된다.
당시 신상옥 감독이 있던 신필름의 배우 응모 소식을 들은 신성일은 현장에 있던 엄청난 인파 때문에 원서도 내지 못하고 돌아갈 뻔 했으나 현장에서 그의 조각 같은 외모와 끼를 알아본 신상옥 감독 덕에 503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된다.
배우 신성일은 “신필름에서 배우 모집하는 광고가 나오더라고요, 날짜는 다가왔는데 원서를 못 냈어요. 나중에 발표 보니까 5031명 중에 제가 됐더라고요. 그때 오천 서른 몇 명이 응모를 했는데 (신필름 건물 앞) 그 길이 미어졌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3년간의 무명 시절을 거치며 최고의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다짐아래 대본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탄탄한 체력을 위해 각종 운동에 매진했다. 그것은 여든이 넘은 그가 지금도 여전히 청바지를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몸매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인생의 황금기에 서 있던 신성일, 그는 1964년 함께 영화에 출연하며 사랑을 키워온 배우 엄앵란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당시 호텔에서 진행된 결혼식에는 약 4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워낙 사람이 많았던 탓에 축의금 사기꾼은 물론 축의금 접수처가 물에 빠지는 헤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행복하게 시작한 결혼이었으나 이 부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부부의 사정으로 총 결혼 기간 53년 중 별거 기간만 39년에 이른다. 특히 2011년, 신성일이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서 폭탄선언으로 사생활을 밝혀 세간에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신성일은 영천과 서울집을 오가며 홀로 생활하고 있다. 영천에 지어진 100여평 규모의 성일가는 전통 한옥 양식을 그대로 살린 청기와 집으로 이곳에서 칠면조 2마리, 백두와 딤프라는 이름의 풍산개 2마리, 그리고 연못의 금붕어를 가족 삼아 낮에는 장터에 나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서는 3km이상 되는 산책로를 걸으며 운동하는 등 진정한 힐링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그는 “우리 나이가 되면 저승에 가는 생각도 해야 돼요, 여기(영천 집 마당)에다가
내 영원히 잠이 들 자리를 여기 만들어놨어요. 이 땅은 제가 기증을 못 하죠
석장을 해놓으면 영원히 누가 뭐 가져가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 만들어놨어요“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재 한편에 모신 작은 제단이다. 집안의 막내였던 본인을 애지중지 하셨던 어머니를 잊지 못해 그는 지금도 제단을 차려놓고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올린다고 한다.
그의 서울 집은 스케줄이 있을 때만 방문하는 곳인데 이곳 역시 영천 집과 마찬가지로 책장 가득 빼곡한 책들이 쌓여있으며 그의 패션 센스를 짐작케 해줄 옷들이 가득 걸려있다.
국회의원 시절 있었던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된 후, 2년간 광적인 독서량을 보였던 그는 다독을 습관으로 이어가며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를 하고 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성일가 주위에 심어 놓은 오죽(烏竹)의 죽순을누군가 훔쳐가 울분을 터트린 모습, 칠면조와 꾸룩꾸룩 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 색다른 신성일의 모습이 공개 돼 눈길을 끈다.
강인한 기상과 사철 푸른 소나무의 매력에 반해 소나무를 다듬으며 함께 마음을 다스린다는 신성일은 “저는 실패한 사람은 아니에요. 나로서는 지금 못 다한 것이 그 한옥은 제가 아주 기념비적으로 한옥을 잘 지었어요. (내가 지은 성일가가) 지방경제, 지방관광문화를 조금 활성화 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내 이름을 걸고 영화박물관을 만들어 놓으면 그때는 나로서 내 할 것은 다 하지 않았나...”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며 늘 푸른 소나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우 신성일의 인생사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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