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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땅의 역사>/ 33회 / 20180121

2018.03.07


<박종인의 땅의 역사>/ 33

선화공주와 무왕 편

방송날짜: 2018 1 21일 일요일 오전 11 50

 

이번 주 선화공주의 진실에 대해 땅을 밟고 그곳의 역사를 읽어내는 기자 박종인이 파헤친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 이번 주에는 선화공주와 무왕편이 방송된다.

 

우리에게 전설 속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선화공주,

2009년 미륵사지 석탑의 서탑 발굴 도중 나타난 사리장엄구!

모두를 흥분케 한 선화공주 존재의 증명은 사택적덕의 딸이란 엉뚱한 존재로 나타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선화공주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미륵사지 석탑 속, 사라진 선화공주

대한민국을 넘어선 아시아 최대 석탑이라 불리는 미륵사지 석탑의 재건 과정 중 2009년 석탑 중앙에서 사리장엄구사리봉영기가 나왔다. 바로 탑을 발원한 사람이 적혀져 있는 역사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흥분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미륵사는 전설 같은 사랑 이야기를 이룬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석탑 속에 나올 존재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우리 백제 왕후는 사택적덕의 딸이라 적혀 있었다. 선화공주, 온데 간데가 없다!

 

 

전설 같은 익산, 땅의 역사가 남은 익산

전라북도 익산에는 마룡지라는 연못이 있다. 천삼백 년 전 그 연못 근처에서 집을 짓고 살던 과부가 연못의 용과 관계하여 아이를 낳는다. 근처에는 여전히 아이 아버지를 뜻하는 용샘이 남아 있을 정도로 전설은 뚜렷하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서 익산 오금산에서 금을 캤으며 무려 이웃나라 신라의 공주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뒤 왕위에 오른다. 이 아이가 바로 서동, 즉 백제 30대 왕인 무왕이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익산 땅의 미륵사지, 제석사지, 왕궁리 유적 등 땅의 역사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왕과 선화공주에 대한 기록은 익산 땅에만 존재하는 걸까?

 

기록의 역사가 남은 부여

선화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에만 존재한다. 실제 역사서라기보다 기이한 이야기 등을 담은 삼국유사와 달리 삼국사기에서는 무왕이 궁의 남쪽으로부터 20리 떨어진 곳에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워 직접 가야금을 타고 노닐었다는 기록이 있다.

무왕이 함께 노닌 이는 과연 누구였을까? 기록의 주인공이 노닐었다는 곳, 부여! 하지만 궁남지로 지정된 사적은 발굴조사 당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삼국사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데. 선화공주의 흔적, 이대로 져버려야 하는 걸까?

 

땅의 역사, 땅으로 알아가는 역사! 땅의 역사로 기대하는 선화공주의 흔적!

백제는 600년 역사 기간 동안 두 번의 천도를 했다. 첫 수도였던 지금의 하남인 위례에서 두 번째 수도인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세 번째 수도는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말이다. 익산 땅의 왕궁리 유적의 경우 혹 백제의 또 다른 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은 분분하다. 이렇게 수도를 여러 번 옮긴 백제 땅의 흔적은 이란 이름들로 알 수 있다. 서울의 몽촌토성의 곰말다리, 웅진과 익산을 아우르는 금강 등이 땅의 증거다.

문헌 기록이 가장 적은 백제, 다만 땅의 역사만은 명확히 남아 백제의 600년 역사를 아직도 확인하고 있다. 익산의 쌍릉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 그 무덤 속 주인공이 선화공주는 아닐까, 기대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