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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역사> / 38회 / 20180304
<땅의역사> / 38회
꽃이라 불리다. 조선 기생뎐(朝鮮 妓生傳)’
방송날짜: 2018년 3월 4일 일요일 밤 11시 50분
* 충청북도 단양 강선대에 핀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사랑 이야기, 과연 진실인가?
*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로 불릴 만큼 그 명성이 자자했던 진주 기생들!
* 단순히 말귀를 알아듣는 예쁜 꽃이 아니었다? 기생독립단 만세 사건
* 대중스타가 되어 핀 꽃, 기생
말귀를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解語花)’라고 불리던 ‘기생(妓生)’
그러나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쉽게 꺾어버릴 수도 있는 꽃이라 전해지는데…
예쁜 이름이자 슬픈 이름을 가진 그녀들, 그리 쉽게 꺾을 수 있는 존재였을까?
웃음을 팔았지만 울기도 했고,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향해 몸부림쳤던 꽃, 기생
바로 그 해어화 이야기를 찾아 역사 속으로 길을 나선다!
# 강선대에 핀 퇴계와 기생의 사랑
충청북도 단양 강선대에는 아름다운 절경과 함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다.
강선대를 쓸쓸히 지키고 있는 무덤 하나.
이곳에는 대학자와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누고 순애보를 지켰던 기생 두향(杜香)이 잠들어있다.
두향은 16세기 단양의 관기(官妓)로, 그녀가 사랑했다고 전해지는 사람은 바로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다.
1548년, 단양 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단양 관기 두향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채 1년도 되지 않아 풍기 군수로 떠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2년 후, 이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향은 강선대에서 자결했다는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이 가슴 먹먹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
과연 우리가 단양에서 마주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 명기들의 고장, 진주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고장, 진주. 예로부터 ‘北평양 南진주’로 불릴 만큼 기생들의 명성 또한 자자했다.
그 가운데 의기의 상징이라 불리는 기생이 있다.
진주대첩에서 대패한 왜군이 이듬해 다시 진주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그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에서 조선 여성들에게 술시중을 들게 했다. 이때 한 일본군 장교를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던 기생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논개(論介)이다.
진주에서는 논개의 혼을 기리고자 매년 의암별제(義巖別祭)라는 진주 논개제(晋州 論介祭)를 올리고 있다.
진주 미인 관기로 명성이 자자한 또 한 명의 기생, 산홍(山紅).
남강 변 아래 의로운 고관대작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절벽, 그곳에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기생 산홍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을사오적(乙巳五賊) 중 한 명으로, 나라를 팔아먹고 산홍을 자신의 여자로 삼으려 했던 친일파 이지용. 그런 그에게 산홍은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나라 팔아먹은 도적이라 합니다. 내가 기생이라 하나 당신 같은 이에게는 절대 마음을 줄 수 없소.”라며 절개를 지킨다.
그렇게 진주는 두 명의 의로운 기생으로 인해 의기와 절개의 땅이 되었다.
# 기생독립단 만세 사건
기생, 그녀들은 단순히 말귀를 알아듣는 예쁜 꽃만은 아니었다.
1919년 3·1운동이 벌어졌던 그해, 그 뜨거운 현장에 바로 기생들이 있었다.
3월 19일 진주에서 시작된 기생독립단의 만세 운동은 수원, 해주, 통영 등으로 퍼져 나가며 전국의 기생조합이 총궐기를 벌이는 사건을 가져온다.
‘기생들이 앞서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29일 오전 수원조합 기생들이 자혜의원에서 경찰서 앞까지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수원 기생 김향화(金香花)는 태극기를 들고 여러 기생을 데리고 수원경찰서 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처럼 많은 신문 기록들이 그녀들의 식지 않는 뜨거운 가슴을 대변하듯 남아있다.
금비녀와 금반지를 팔아 산 광목으로 만든 소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들.
그녀들은 절대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이 아니었다. 굳세고 당찬 대한민국의 여성들이었다.
# 기생, 대중스타가 되다
세월이 흘러가며 기생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모됐다.
근대 문물이 들어왔던 20세기 초기, 대중이 문화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았던 시대이다.
오로지 기생들만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출 줄 알았고 대중문화 그 중심에 서게 된다.
그녀들이 곧 대중스타였다.
그 중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생 출신 가수 왕수복(王壽福). 1933년 가수로 데뷔한 기생 왕수복은 음반 판매 120만 장을 돌파하며 조선 10대 가수왕에 등극했다.
다른 여러 기생 또한 각종 광고와 엽서 등에 등장하며 대중스타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동시에 암울하기만 했던 일제강점기 시대 기생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새장 속에 갇힌 새에 불과했던 스스로의 위치를 깨닫고 ‘장한(長恨)’이라는 잡지를 직접 발행하고 목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현실을 타개하고자 노력했다.
바위보다 굳고 강처럼 흐르던 절개, 그러나 역사 뒤에 가려졌던 그녀들!
꽃이라 불리던 ‘기생’들의 삶을 찾아 나선 박종인의 땅의 역사, 38회!
오는 3월 4일 일요일 오전 11시 50분에 만날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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