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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 클럽> / 129회 / 20180306
<모란봉 클럽> / 129회
<제3의 신분! 만경봉호의 비밀> 보도자료
방송일시: 2018년 3월 6일 화요일 밤 10시
출연: 박영숙(재일교포 2세) 김주성(재일교포 3세) 박향수(재일교포 3세)
유나(화교 4세) 임윤미(북송교포 2세) 김일국(남한정착 2년차 CEO)
김철웅(북한 피아니스트) 김가영(상위 1% 엄친딸) 박수애(북한 리듬체조)
이유미(북한 장사의 신) 김지영(김일성종합대학) 안찬일(탈북 박사 1호)
/안지환, 성대현, 이병진
▶제3의 신분! 만경봉호의 비밀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제3의 신분 <만경봉호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한예술단 남한 방문 때 이용된 만경봉 92호는 1992년 김일성 80번째 생일을 맞아 조총련 자금으로 건조한 선박으로, 2002, 2018년 북한의 남한 방문 수단과 숙소로 이용되었다. 대규모 인원수용과 2천 톤가량의 화물적재가 가능해 주로 일본과의 교류에 이용되었다고. 대북제재로 인해 일본 입항 금지 이후 만경봉 92호는 연료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만경봉 92호와 비슷한 만경봉호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경봉호는 북한에서 1971년에 제작한 여객선으로 재일교포의 북송과 무역업에 이용되었다. 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하던 시기에 북한은 일본에서 유입된 엔화에 의지했다고 한다. 그 당시 조총련을 통해 엄청난 액수의 엔화가 유입되었고, 보천보전자악단을 내세워 일본 전역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모금을 했다고 전했다.
▶ 만경봉 92호 타고 북한여행 가는 재일교포?!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만경봉 92호를 타고 북한을 방문한 재일교포 3세 박향수가 출연했다. 조총련 소속 재일교포로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왕래할 수 있어, 90년 수학여행, 96년 상공인 조국방문단으로 총 두 번의 방북을 했다고. 두 번째 방문 당시 북송사업으로 북한에 간 외삼촌을 보기 위해 북한을 찾은 모녀. 그러나 외삼촌의 장기출장으로 인해 만나지 못했고 주변을 겨우 수소문해 외삼촌과 만날 수 있었다고. 힘들게 만난 외삼촌에게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는 박향수 회원. 바로 삼촌이 비밀경찰에 잡혀갔다는 것! 불과 몇 시간 후면 일본으로 가야 하기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던 상황에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그 후 북한 방문 거부로 방북할 수 없었고, 외삼촌마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20년간 외삼촌 소식을 찾아 헤맸고, 작년 일본에서 만난 탈북민에게 외삼촌을 소식을 들은 박향수 회원. 일본에 거주하던 큰외삼촌이 북한 외삼촌과 통화 도중 “루마니아가 인민들의 힘으로 무너졌으니, 북한도 곧 무너질 거라고 조금만 더 참아”라는 이야기를 언급, 통화를 도청한 보위부에 의해 체포됐다고. 보위부의 고문으로 외삼촌은 결국 돌아가시고, 외삼촌 가족은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고 전했다. 박향수한테 만경봉 92호는 슬픈 사연이 가득한 배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거짓선전 속 재일교포 북송사업의 실태!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해방 이후 자본력이 부족했던 북한이 재일교포를 통해 노동력과 자본을 충당시키기 위해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귀국시킨 것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낙원이라는 북한의 선전에 속아 수많은 재일교포가 북송됐다고. 거짓선전에 속아서 북한으로 간 재일교포들은 뒤늦게 알게 된 북한의 현실. 일본 가족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해외로 보내는 편지를 모두 검열해 언급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북송 재일교포는 함축적으로 실상을 전달하거나 우표 뒤에 편지를 작성하는 등 북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 일본 내의 차별을 피해서 북한으로 갔던 재일교포들은 북한에서 더 큰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이어 80년 이후 일본 내 친척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는데 일본에서는 북한으로 간 가족들을 위해 최대한 지원을 했고, 그 덕분에 북한 주민보다 재일교포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어 62년 101차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간 재일교포 2세 박영숙이 생생한 경험담을 전했다. 북한의 무상교육 선전에 속아 부모님과 형제들이 세 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이주했다고. 박영숙은 62년 발간된 북한의 실상을 기록한 책을 읽고 북한에 안 가겠다고 결심했지만, 북한에서 오빠가 보낸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읽고 북송선에 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북한에 도착하니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청진항에 도착해서 본 북한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이후 재일교포 정착을 위한 기관인 초대소에서 교육을 받은 후 신의주에서 정착했지만, 건강 악화로 직장에서 잘리고 배급이 끊기면서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늦은 나이에 성공한 남한 정착이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남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부모님 곁을 떠나 15살에 오른 북송선에 오르다?!
이날 모란봉클럽에 출연한 김주성은 조부모님을 따라 북송선 만경봉호를 탄 사연을 밝혔다. 할아버지가 조총련 간부여서 재일교포임에도 일본에서 북한 주민들과 똑같은 집안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북한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를 따라 북한행을 결심했다고. 아버지는 북송사업 참여를 결사반대했지만, 할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김주성은 북한 선전을 맹신했었다. 또 일본 내에서 재일교포들은 차별을 겼었는데 어린 나이에 상처가 컸다고! 그래서 만경봉호를 타고 청진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환영해주는 북한 주민의 옷차림과 초라한 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할아버지 역시 북한의 현실을 마주하고 탄식을 했다고. 북한 생활 1년 만에 조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고 이후 조총련 간부 자녀 합숙 사업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전했다.
▶재일교포 고영희의 모든 것!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김정은, 김여정 생모인 고영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영희 아버지 고경택은 제주도에서 건너간 재일교포라고. 고영희 또한 재일교포 출신으로 62년도에 북송선을 탔다. 이후 고영희는 북한 최고로 손꼽히는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전국학생소년예술축전에 뽑혔다고 전했다.
이어 김정일과 고영희의 러브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수대예술단은 김일성의 지시로 만들고 김정일이 관리를 했다. 이때 김정일이 만수대예술단 소속이던 고영희에게 푹 빠졌다고 한다. 김정일이 고영희를 너무 좋아한 결과 예술단 연습실에 CCTV를 설치했다는 비화도 있을 정도였다. 재일교포 출신이라서 입당이 힘든 고영희를 위해 김정일이 예술단 전원을 입당승인 내렸다. 또 고영희가 해외공연 후 입국할 때마다 김정일이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갈 정도로 각별했다고 한다.
이어 고영희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영희의 말 한마디에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조총련에 장학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고영희의 입김으로 조직의 미래가 결정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했고, 고영희의 노력으로 김정일이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장자 계승론’을 따르는 북한에서 김정남이 아닌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영희 때문이라는 것! 그만큼 고영희가 김정일과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유방암에 걸렸을 때 김정일의 옆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술을 거부하고, 항암치료만 반복했다고. 그러다 프랑스에서 항암치료 중 사망했다는 것! 김정일은 전용기를 띄워 시신을 수습하고 평양에서 극비리에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한다.
이어 고영희와 김여정의 평행이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여정은 김정일과 고영희를 고루 닮았지만 웃을 때 입꼬리와 눈매는 고영희 판박이라고. 김여정의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스타일인데 고영희 역시 수수한 옷차림을 선호했다고. 고영희는 김정일과 현지 지도를 같이 다녔고, 김여정은 김정은 옆에서 행사 준비부터 동행, 보좌까지 한다고. 고영희가 김정일에게 총을 든 경호원을 제지했던 일화가 있는데 김여정도 그런 고영희의 대범함을 닮았다고. 북한은 행사에서의 자유로운 이동 모습과 김씨 일가 중 ‘최초의 남한 방문’은 그 대범함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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