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룸

<모란봉클럽> / 145회 / 20180701

2018.07.27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행보! 이유 있는 비밀>



방송일시: 71일 일요일 밤 910분 / 145회


 


출연 : 김혜숙(평양 중구역) 김도경(함경북도 방송원) 김주성(조선작가동맹 출신)


                  안찬일(탈북 박사 1) 김철웅(평양음악무용대학) 한서희(인민 보안성 협주단)


                  김일국(최연소 당간부) 이유미(북한 장사의 ) 박수애(북한 리듬체조)


                  김지영(김일성종합대학) 김가영(북한 유치원 교원)


           /성대현, 표진인, 김정우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행보! 이유 있는 비밀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행보! 이유 있는 비밀>이라는 주제로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정은) 파격행보와 이에 따른 평양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란봉클럽에 처음 출연한 김혜숙. 김혜숙은 평양 토박이 출신으로 평양에서 특별한 삶을 살았다고 밝혀 패널들의 관심을 집중 받았다는 후문.


 


이전 정권과 다른 파격행보! 김정은을 파헤쳐라!


선대와 달리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김정은. 먼저 김일국이 <북한의 경제 선생님은 싱가포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정은의 가장 파격행보라고 뽑을 있는 북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인 싱가포르는 북한의 경제 모델로 수년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관광국가, 물류국가, 금융허브로 불리는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부터 싱가포르 경제를 연구하라고 지시했다고. 북한 내에서 싱가포르 비영리단체의 강연은 물론 당일꾼을 싱가포르로 직접 연수 보낼 만큼 적극적인 지시를 했다고 전했다.


선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정은의 다른 행보는 과학자우대! 노래와 춤만 잘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예술인을 우선으로 했던 김일성, 김정일.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을 시작하자 과학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는 물론 과학자거리까지 조성하며 과학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김정은은 여군과 팔짱을 일대일 사진을 찍어주고 해외방문 중국의 비행기를 이용하는 젊은 지도자가 보여준 다양한 파격행보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평양 상위 1% 전하는 초호화 평양 라이프


모란봉클럽을 처음 찾은 김혜숙은 <평양 상류층의 파격 라이프!>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론인 출신 부모님 덕분에 남들과는 다른 생활을 했다는 김혜숙. 그녀가 살던 중구역의 중심에 위치한 간부아파트는 70년대부터 샤워시설, 중앙난방, 테라스, 방음장치가 무도장이 있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이어 김혜숙은 김정일의 친필말씀으로 평양연극대학에 입학할 있었음을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청소년 창작 글짓기대회에서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에 대한 작품을 썼고 이에 감동한 김정일이 직접 입학을 시켜준 . 졸업 이후 중앙방송위원회로 배치받아 북한 주민이라면 아는 어린이프로그램 내레이션 원고를 쓰는 방송작가 일을 해왔다.


이어 친분이 있었다는 장성택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전했다. 친근한 호칭은 물론 김혜숙의 대학 입학 당시 장성태근 옥류관에서 파티를 열어줬다고. 장성택을 따르며 함께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모여 만든 택성악단과 보천보전자악단의 유래를 전해 패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선망의 대상 여성 방송원 출신 김도경!


방송 차를 타고 다니며 선전·선동을 했던 방송원 출신 김도경. 뛰어난 화술실력으로 선전대에 배치되었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모든 여성의 선망의 직업인 방송원이 되었다. 이후 선전선동부에서 어린이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을 만큼 출중한 실력을 스튜디오에서 뽐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는 후문.


이어 <신분을 숨긴 가족의 최후?!>라는 키워드에 담긴 사연을 공개했다. 김도경의 가족은 일제강점기 월북한 남한 출신이었던 ! 하지만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다시 월남했고 북한에 남은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사망 처리를 하며 없이 생활할 있었다.


고난의 행군 어려워진 집안 사정 때문에 중국으로 장사를 하러 큰오빠 부부. 하지만 2 만에 북송되어 오빠는 참을 없던 고문에 남한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과정에서 남한에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정체가 밝혀지며 참혹하고 잔인한 고문을 당한 처형을 당했다. 이후 할아버지에 대한 문서 조작으로 집안은 몰락했고 대가족 탈북이 시작된 . 올케를 시작으로 어머니까지 남한행을 했고 하필 대의원 선거와 겹친 어머니의 탈북.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치범이 된다는 북한의 생리를 아는 어머니는 투표조사가 시작되기 자녀를 데려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고. 결국 모두 남한에서 재회했지만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깊은 원망 때문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남한에 있던 할아버지와의 만남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김도경. 고민 끝에 할아버지를 만났고 대화를 통해 진심이 전해지자 어느덧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졌다. 지금은 할아버지와 큰오빠에 대한 원망보단 남한으로 오게 해준 고마운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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