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룸
인생다큐 <마이웨이> / 112회 / 20180913
인생다큐 <마이웨이>
윤복희의 인생 이야기.
방송일시 :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밤 10시 / 112회
■ 살아있는 전설 윤복희의 생애 첫 다큐멘터리
■ 1952년 5살에 데뷔 67년차를 맞은 윤복희
■ 윤복희의 아버지는 국내 최초 뮤지컬 창시자 겸 개그맨 1호, 어머니는 최승희의 제자
■ 윤복희, 루이암스트롱 앞에서 모창하고 미국에서 도움도 받아
■ 윤복희의 원래 이름은 윤복기. 윤복희는 간판 장인이 만들어낸 실수
■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광고는 거짓. 귀국할 때는 롱코트였다
■ 1986년 차를 판 후, 뚜벅이 생활 중인 윤복희
■ 윤복희, <여러분>을 부르며 스스로 치유받았다
■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현역 뮤지컬배우 생활 중인 윤복희
■ 윤복희와 인순이의 만남. 그들의 공통점은 걸그룹 출신
올해로 데뷔 67년차를 맞은 윤복희. 오빠 윤항기와 함께 20여 년 만에 콘서트 무대에 서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윤복희가 무대에 처음 올랐던 것은 1952년. 5살의 어린 나이에 무대에 오른 그녀는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대에 올라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회상한다.
무대는 한번만 서고 싶었는데
첫 무대 서자마자 제가 굉장히 히트가 되어버렸어요
요즘 말로하면 갑자기 유명해져버렸어요
당시 아역으로는 저밖에 없었거든요
- 윤복희 / 뮤지컬배우, 가수 -
“그때 말을 배우기도 전에 노래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성악가였던 아버지와 무용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윤복희.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뮤지컬이 아버지를 통해 국내에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는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윤부길 씨는 국내 최초의 뮤지컬 창시자이자 국내 개그맨 1호 였으며 어머니 성경자(예명 고향선) 씨는 당시 천재 무용가로 불렸던 최승희의 제자이기도 하다.
건강이 좋지 못했던 아버지 대신 유랑극단에 들어가 일을 했던 어머니. 그러나 얼마 후 어머님은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몇 년 후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서 윤항기, 윤복희 남매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 윤복희는 어머니에 대한 부재를 채우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단순히 죽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어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윤복희. 당시 윤복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던 걸까?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하다 보니까
제가 죽으면 엄마에게 갈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오빠는 시골에 있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러니까 배고플 수도 있고, 추울 수도 있었겠죠?
‘죽으면 엄마에게 간다’
단순했어요. 그냥 엄마에게 가고 싶었어요
- 윤복희 / 뮤지컬배우, 가수 -
그러나 불안정했던 가족사를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녀의 무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화려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미8군을 위해 공연을 시작했다는 윤복희.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이들이 윤복희를 더 큰 세상에 발돋움 할 수 있도록 계단 역할을 해줬었다고. 그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도 많았다.
“루이 암스트롱도 깜짝 놀랐다고 그러더라고요” 윤복희는 그 중 가장 생각나는 인사로 루이 암스트롱을 꼽았다. 동양의 젊은 여자가 자신의 성대모사를 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는 루이 암스트롱. 윤복희를 눈 여겨 본 그는 이후 그녀가 미국으로 무대를 넓히는 데도 도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간혹 그녀의 공연을 찾아와 키운 제자를 바라보듯 뿌듯한 미소를 지었었다고. 세기의 인연 윤복희와 루이 암스트롱이 사이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더 숨어있을까?
루이 암스트롱 씨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제가 활동하던 라스베이거스에 오시면
제가 공연하는 모습을 무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보고 계셨어요
- 윤복희 / 뮤지컬배우, 가수 -
루이 암스트롱뿐만 아니라 밥 호프 등 해외 유명 스타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윤복희. 대중에게도 명실공히 한류 1세대의 주역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윤복희는 <코리안 키튼즈>라는 걸그룹을 결성해 리더로서 전 세계를 누볐다. 미국에서는 ‘윤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다고. 그런데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원래 제 이름이 윤복희가 아니에요”라고 밝혔는데?
윤복희의 원래 이름은 ‘윤복기’. 즉 윤항기, 윤복기 남매였던 것?! 그렇다면 왜 그녀의 이름이 윤복희가 된 것일까? 그녀의 이름이 달라진 것은 공연 간판을 그리던 아저씨 때문이었다고 한다. 간판을 그리시던 장인들이 ‘복기야’ 부르는 소리를 복희로 잘 못 듣고 간판에 ‘윤복희’로 적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것! 하루아침에 평생의 이름이 바뀐 복기-복희의 황당한 사연을 방송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녀를 둘러싼 오해는 이름뿐만이 아니다. 인기가 많았던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윤복희. 특히 미니스커트 열풍이 불어 닥쳤을 당시 그녀의 이미지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다고? 당시 그녀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한 모습이 광고로 제작되며 충격에 빠진 사람들. 일부 대중은 그때 윤복희가 누군가가 던진 달걀에 맞은 줄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귀국했던 것이 아니라고 밝힌 윤복희.
“귀국했을 때가 겨울이었어요. 미니스커는 생각도 못 하지.” 실제로 입국할 당시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미니스커트는 고사하고 온몸을 코트로 꽁꽁 싸매 맨살 보이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당시 통금시간이 있던 상황이라 새벽에 공항에서 통금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이슈 메이커 윤복희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이 방송을 통해 전격 공개된다.
한편 이번 방송에서는 다른 토크쇼들에선 만나볼 수 없는 그녀의 일상생활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스케줄을 하러 나서는 윤복희가 이동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버스! 알고 보니 그녀는 수십 년째 차 없이 다니는 ‘뚜벅이’라고 하는데? “제가 버스 타는 게 그렇게 신기해요?” 가끔 스케줄이 있을 때 말고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즐겨 탄다는 윤복희. 1986년 돌연 소유하고 있던 차를 팔아버린 후에는 이제껏 차를 산 적이 없다고 한다. 대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그녀가 대중교통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무대에서 맡은 역할 외에도
어깨에 힘주고 돌아다니면 더 코미디일 거 같아요
무대에 설 때는 완전히 광대니까요
그거를 딱 벗어버리고 나오면
보통 사람보다 더 평범해지는 거예요
- 윤복희 / 뮤지컬배우, 가수 -
일상생활 속에서도 시원시원하고 소탈하게 생활하는 윤복희. 스케줄 도중에도 일체의 불평불만 없는 모습이 오히려 제작진을 당황하게 했는데? 김밥 한 줄로 식사를 대신하는 윤복희를 보며 제작진이 “이제는 이런 김밥이 좀 물리시지 않냐”고 묻자 통쾌하게 웃으며 대답한 윤복희. “잠자는 것과 먹는 것은 평생 물릴 일이 없다”며 김밥 한 줄이라도 먹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평생을 톱스타로 살며 화려한 무대에 섰던 윤복희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소탈하고 검소한 반전매력을 방송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윤복희 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키워드 히트곡 <여러분>을 가진 가수다.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그랑프리(대상)을 받은 '여러분'. 그러나 윤복희는 자신이 부른 것보다도 임재범, 에일리 등 유명한 후배 가수들이 ‘여러분’을 불러줘 오히려 덕을 봤다고 말한다. 또한 <여러분>은 윤복희 스스로가 치유 받았던 고마운 곡이라고 언급했는데. 지금도 <여러분>을 부를 때면 다른 사람도 나처럼 치유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노래에 대해서는 강한 자부심을 보이는 그녀는 본인이 가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왜 가수라는 게 자꾸 제 앞에 붙죠? 저는 가수가 아니에요” 평생 윤복희를 가수로 알고 온 대중들이 많아 오히려 얼떨떨하다는 윤복희. 윤복희는 가수가 아니라는 그녀의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왜 가수라는 이름이 자꾸만 내 앞에 붙죠?
가수 활동으로 제가 돈을 벌고 이런 적이 없거든요
이게 무슨 노래에요
가창이라고 저는 생각 안 해요
- 윤복희 / 뮤지컬배우, 가수 -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윤복희는 자신을 ‘뮤지컬 배우’라고 소개한다. 뮤지컬 배우 윤복희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데.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무대 위에서 추락 사고를 당했을 때도 무대를 마무리하기 위해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당시 척추를 다쳐 절뚝이며 연기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토록 그녀가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유는 뭘까?
뮤지컬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애정은 뮤지컬이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뮤지컬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어요. 제가 귀한 사람이고, 이런 재능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게 바로 이 뮤지컬이에요” 윤복희에게 뮤지컬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흔들리던 그녀를 잡아준 소중한 자리라는 것!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뮤지컬 <하모니> 등에 출연하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이번 방송에서는 윤복희와 그녀의 아끼는 후배 인순이의 특별한 인연이 공개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걸그룹 출신에, 가수와 뮤지컬 배우를 넘나들며 가요계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비슷한 게 많다고 하는데. 한 작품에서 인순이가 윤복희의 대역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시작됐다는 두 사람의 인연. 그런데 인순이는 누구나 탐내던 윤복희의 더블 캐스팅 제안을 번번이 거절했다고 하는데? 대체 인순이는 왜 윤복희의 러브콜을 거부했던 걸까? 방송을 통해 두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무대 위 윤복희를 살았다는 건 축복이에요, 제 삶을 돌아봐도 이렇게는 다시 못살 거라고 생각해요” 고달픈 삶 속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앞에도 서고, 그러나 그 어디에도 때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윤복희. 한국 가요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살아있는 전설 윤복희의 우여곡절 인생 이야기는 2018년 9월 13일 목요일 밤 10시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끝.

이전
<탐사보도 - 세븐> / 52회 / 20180912 2018.09.11
다음
<구조신호, 시그널> / 41회 / 20180914 2018.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