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룸

<모란봉클럽> / 170회 / 20180113

2019.01.22

<모란봉클럽>


방의 승부사들! 나는 프로다!



방송일시: 2019113일 일요일 밤 920 / 170

 

출연: 박영호(청년사업가)         이채명(탈북 작가)    박충일(두만강 파이터) 김민기(식품업체 CEO)

김주성(조선작가동맹 출신) 강유진(함흥체대 핸드볼선수) 김철웅(북한 피아니스트) 이유미(북한 장사의 )

김지영(김일성 종합대학)   박수애(북한 리듬체조)  김가영(북한 유치원 교원)  / 성대현, 표진인, 김정우

 

2019 방을 노린다! 프로 승부사들의 이유 있는 !

             이날 모란봉클럽에서는 새해에 누구나 꿈꾸는 방과 관련!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남한에서 진정한 프로가 승부사들이 대거 출연해 스튜디오를 밝혔다. 북한에서 밀수하던 물건으로 남한에 성공한 사연부터 밥을 굶던 소년이 밥으로 억대 매출의 성공신화를 이뤘다는 이야기까지! 소개만으로도 패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는 후문.

 

북한의 위험한 밀수품! 남한에서 억대 보물이 되다?!

             이날 모란봉클럽에 처음 출연한 김민기는 본인의 보물이라며 까만 음료 소개했다. MC 남한패널은 김민기가 가져온 까만 음료 맛보았고 음료의 정체가 개구리 엑기스라는 말에 모두 놀랐다. 북한에서 개구리를 시작으로 송이버섯, 만수대예술단 그림까지 밀수했던 김민기. 회령부터 중국까지 직접 왔다 갔다 하며 도강했던 17 최연소 밀수꾼이었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부자를 목표로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밀수로 동네에서는 프로가 되었고 어린 나이에 가족을 먹여 살릴 만큼의 돈을 있었다고. 그러나 돈을 버는 김민기를 질투한 지인의 신고로 보위부에 체포! 회령 밀수죄 1호범이 사연도 있다고 한다. 3 형이 떨어졌지만 누나의 도움으로 6개월 구류장 생활을 겪고 출소한 김민기. 매일 반복되는 미행과 감시에 이상 북한에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충성분자였던 누나와 엄마를 탈북의 길로 꼬시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 도착해 누나, 엄마와 중국에서 돈을 벌며 살려고 결심했던 김민기는 어느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되어 남한까지 오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동네에서 살던 누나가 남한에 가서 기사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기사를 통해 누나와 연락을 취해 남한까지 있었다는 특별한 사연에 모든 패널이 놀랐다는 후문.

 

강철 주먹의 일등 공신은 여동생?! 진짜 방의 사나이!

             현재 프로 격투기 선수로 활동 중으로 박충일은 순박한 웃음 뒤에 숨겨진 진짜 방을 보여주겠다고 이야기해 모든 패널의 기대감을 높였다. 실력 검증을 위해 남한 패널 성대현을 상대로 시범을 보였고 성대현은 강철 주먹이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파워라고 덧붙였다. 박충일은 본인이 격투기 선수를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인 여동생이라고 이야기했다.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중국으로 탈북한 어머니를 대신해 여동생에게 부모님 역할을 해야 했던 어린 박충일. 자신보다 어린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야 했고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집만 나무를 옮기는 궂은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생활을 하던 어느 브로커가 찾아와 엄마의 소식을 전했고 계속되는 설득 끝에 17살의 어린 나이에 남한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남한 생활 우연히 TV에서 격투기 경기를 보게 되었고 북한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현재까지 꿈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모든 패널이 한마음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영양실조로 죽기 직전까지 갔던 소년! 푸드트럭으로 인생 역전!

             순박한 모습으로 모란봉클럽에 처음 출연한 박영호는 과거 끼를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박영호가 8살일 중국으로 떠난 어머니 때문에 하루아침에 형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고. 엄마를 찾기 위해 중국에 왔다 갔다 하는 형을 기다리며 생활했던 박영호는 영양실조를 겪게 되었고 어느 무조건 등만 보고 따라오라는 말에 형을 따라나서게 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형을 따라 길은 다름 아닌 중국이었고 삼엄한 경비에 총성을 듣기도 했다고. 중국 생활을 거쳐 선교사를 통해 남한에 도착해 글과 숫자를 모르는 상태로 남한정착에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하는 박영호. 성인이 탈북 청소년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CEO 꿈꾸고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사업을 구상해 현재는 억대 매출을 버는 푸드트럭의 사장이 되었다고 한다. 끼를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년이 밥을 판매하며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는 이야기에 대견하다는 의견과 함께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는 후문.

 

남한에서 새롭게 찾은 ! 집안을 일으키려 탈북한 첫째 , 작가의 꿈을 이루다!

             북한에서 동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양보했던 첫째 이채명은 남한에서 새롭게 꿈을 찾았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꿈에 모든 투자해 작가가 되어 현재는 권의 에세이를 냈다는 그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까지 휴학했었던 그녀는 중국에 가면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강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길이 팔려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고 매일 도망을 꿈꿨다고. 중국에서 낳은 젖먹이 아들을 떼놓고 울면서 도망쳤지만,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4 만에 연락이 닿은 북에 계신 어머니가 알려준 사촌 언니 전화번호를 통해 남한으로 오게 되었다. 현재도 1년에 번씩 중국에 있는 아들과 만나 행복한 날들을 보내곤 한다는 그녀는 상담과 대화로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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