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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142회/20190417
인생다큐 <마이웨이>
방송일시 : 4월 17일 수요일 밤 10시 / 142회
■ <분홍립스틱> 원조 가수! ‘작은별 가족’의 강애리자
30여 년 만에 활동 재기한 사연은?
■ 가수 강애리자와 전영록, 부모님대부터 이어져온 친남매 같은 40년 우정
■ 가수 전영록, 강애리자와의 만남에서 살짝 공개
“올 6월 가수 최초로 어머니 故 백설희와 현인 우표 나온다.”
■ 가수 강애리자와 전영록 닮은 꼴 “둘 다 정부정책으로 인해 활동 접어”
■ 북한에서도 탐냈던 <작은별 가족>의 일원 강애리자,
산아제한정책으로 활동 중단한 사연
■ 가수 강애리자, 자녀 교육으로 떠난 미국이민, 15년간의 우울증, 이혼 그리고 재혼
■ 가수 강애리자의 놀라운 과거, “내 진짜 대표곡은 <마징가제트>, <플란다스의 개>”
■ 가수 강애리자 재혼 고백 “남편 덕분에 우울증과 무대 공포증 극복, 다시 가수 시작”
■ 다시 뭉친 가족 “작은별 가족은 해체한 적이 없다“
■ 강애리자의 <분홍 립스틱>이 영화 <광복절 특사>에 삽입된 비하인드 스토리
■ 15살 차이 배우 김민정과 40년 인연 친자매처럼 지내게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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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립스틱> 원조 가수! ‘작은별 가족’의 강애리자
30여 년 만에 활동 재기한 사연은?
2002년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송윤아가 불러 화제를 모은 <분홍립스틱>, 이 노래는 1988년 가수 강애리자가 불러 큰 사랑을 받았던 노래이다. 가수 전영록과는 40년 우정을 자랑하는 강애리자, 알고 보면 나이는 전영록이 더 많지만 강애리자가 연예계 선배다. 강애리자는 70년대 중, 후반 패밀리 그룹이었던 ‘작은별 가족’ 출신. 당시 국내외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작은별 가족을 북한에서도 데리고 가려고 호시탐탐 노렸다는 후문. 한 동안 모습을 감췄던 가수 강애리자가 30년 만에 다시 활동을 재기. 결혼 자녀 교육 문제로 미국으로 이민, 15년간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다 결국 이혼을 결심한 그녀. 자신의 원래 자리인 가수 강애리자로 돌아오기 위한 그녀의 새로운 비상을 마이웨이에서 소개한다.
가수 강애리자는 최근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그녀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공연을 한다. 소규모 공연이라도 찾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는 그녀. 그곳이 치과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라도 그곳에 가서 자신의 대표곡인 <분홍립스틱>을 부른다. 강애리자의 대표곡 <분홍립스틱>은 1988년 발표한 노래로 2002년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송윤아가 불러 더욱 화제가 되었던 곡. 1970년부터 90년대 사이 발매된 노래 가운데 대중에게 사랑받은 노래를 집계한 한 조사에서 7위에 선정될 만큼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 활동을 끝으로 돌연 무대를 떠난 그녀. 30년 만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뒤 전성기 때의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5, 6개월 동안은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다시 노래를 시작하고) 6개월, 5개월은 너무 많이 울었어요
또 이걸 어떻게 하냐... 살도 좀 빼자 제가 살이 좀 쪘었으니까
그랬는데 노래 작곡해주는 친오빠하고 남편이
저한테 있는 그대로 해보자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지금 네가 88년도의 목소리와 88년도의 몸매와
그 얼굴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싫어할 거야
- 강애리자 인터뷰 중
■ 가수 강애리자와 전영록, 부모님대부터 이어져온 친남매 같은 40년 우정
■ 가수 전영록, 강애리자와의 만남에서 살짝 귀띔
“올 6월 가수 최초로 어머니 故 백설희와 현인 이미지 담은 우표 나온다.”
그녀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 함께 활동하던 이들의 축하가 이어지는데, 그 중 그녀와 가장 가까웠던 사이인 가수 전영록과의 특별한 사연도 공개된다. 서로의 부모님과도 친한 강애리자와 전영록. 강애리자의 어머니 주영숙은 아직도 전영록의 어머니이자 가수 故 백설희를 ‘설희 언니’라고 부르신다고. 전영록은 강애리자와의 만남에서 “다가오는 6월에 가수들 중에서는 최초로 어머니 백설희와 현인의 이미지를 담은 우표가 나온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가족끼리 함께 중국 여행을 갔던 추억담과 활동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강애리자는 전영록에 대해 말하길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전했다.
또한 사람들이 둘 중 누가 선배냐는 질문을 하는데 54년생 전영록과 62년생 강애리자 중 실제로 연예계 선배는 3살에 데뷔한 강애리자다.
■ 가수 강애리자와 전영록 닮은 꼴 “둘 다 정부정책으로 인해 활동 접어”
■ 북한에서도 탐냈던 <작은별 가족> 7남매의 운명!
산아제한정책으로 중단된 활동
80년대 최고의 청춘 스타였던 전영록. 1985년 개봉했던 <돌아이>라는 영화는 전영록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한 사나이로 출연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다. 전영록이 <돌아이> 영화 촬영 할 당시, 우연히 강애리자의 집 앞에서 촬영이 이뤄진 적도 있었다고. 가수 전영록은 스스로를 ‘가요계의 이단아’라고 말하며, 활동 당시 그가 옷깃을 세우고 운동화를 신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갑자기 군대를 가게 됐다고 전했다.
처음으로 내가 깃 세우고 나왔거든
불량스러워보였나 그게?
‘너는 청소년들한테 나쁜 영향을 끼쳐!’
‘깃 올리고 소매 걷는 거! 운동화 신는 거! 청바지는 왜 입어?’
(그 후에) 갑자기 군대 가더라고 내가. 끌려갔어
영화도 네 편 찍고 있었고 여러 가지 하고 있었는데 다 못했어
- 전영록 인터뷰 中
강애리자는 가족 그룹 작은별 가족으로 활동, 70년 중후반에 활동한 작은별 가족은 활동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 작은별 가족은 6남 1녀로 일곱 명이 모두 바이올린, 플루트, 트럼펫, 대금, 첼로 등 3~5가지의 악기를 연주 할 수 있어 큰 화제가 됐었다. 그들의 대단한 인기에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정권 때 작은별 가족을 전 세계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을 해주겠다며 이들을 북한으로 데리고 가려고 애를 썼다고 전했다. 일본 공연 당시 조총련에서 작은별 가족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을 정도였다. 작은별 가족의 아버지 강문수는 작은별 가족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가족을 만들고 싶은 의욕은 있었는데
정부정책인 산아제한 문제로 인해서
아이들이 7남매 이걸 정부에서 (좋아하지 않았죠)
극구 말하자면 모든 활동에 대한 제재을 시켰죠
-강문수/강애리자 아버지 인터뷰 中
그대 당시엔 방송 PD가 관심이 많아서 (작은별 가족을) 출연을 시키면
청와대에서 말이 오는 거예요
지금 시책에 안 맞는 사람들을 왜 출연시키냐고 그럴 정도였어요
- 주영숙/강애리자 어머니 인터뷰 中
당시만 하더라도 정부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 등 산아제한정책을 펼치고 있었기에 자녀가 7명인 작은별 가족은 활동에 제한을 받기 시작했고, 아들들의 군입대와 함께 활동이 흐지부지 되게 된다.
강애리자는 현재 작은별 가족 형제들의 근황을 전했는데, 첫째 강인호는 해외에서 컴퓨터 회사를 운영, 둘째 강인혁 역시 해외에서 선교사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셋째 강인엽은 색소폰 선생님을, 넷째 강인경은 방랑자라 현재 어디에 있는 수소문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웃으며 전했다. 또한 분홍립스틱을 작곡 작사한 다섯째 강인구는 현재 음반사업과 녹음실을 운영 중이며, 막내 강인봉은 ‘자전거탄 풍경’으로 여전히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당시 작은별 가족의 단장이었던 영화감독 출신의 97세 아버지는 현재도 아내와 함께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강애리자의 어머니 주영숙씨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 성악가로서 촉망받고 있었다. 잘 알려진 <꽃 중의 꽃>이라는 곡을 가장 먼저 녹음한 원곡 가수도 바로 어머니 주영숙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영숙씨는 자신의 꿈보다 7남매를 위해 살았으며 1985년 ‘장한 어머니상’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애리자를 보며 딸이 하나 밖에 없어 어릴 적부터 악기뿐 아니라 발레학원, 모델, 무용 등을 너무 많은 걸 시킨 것이 이제와 생각하니 미안하다고 전했다.
■ 가수 강애리자, 자녀 교육으로 떠난 미국이민, 15년간의 우울증, 이혼 그리고 재혼
강애리자는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결혼 후 자녀교육을 위해 떠났던 미국이민 시절을 꼽았다. 노래를 하지 못하고, 부모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원할 때 만날 수 없었다는 것에서 오는 우울증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때는 진짜 제가 노래할 곳도 없었고
형제도 아무도 없는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살림하고
또 애들 오면 밥해주고 또 과외활동 다니고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고 사는 게 굉장히 ‘벌’이더라고요
저는 그 당시에는 지나가는 비행기만 보면 울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강애리자 인터뷰 中
그녀는 미국에서 있으면서 15년간 우울증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저랑 같이 활동했던 시기에 있던 사람들이
분명히 저보다 후배인데 지금은 저보다 저 위에 올라가 있고
나도 옛날에는 한때 잘 나갔는데
그런 것 때문에 우울증이 오지 않나 싶어요
텔레비전에 나올 때 나도 저기 무대에 올라가서 있었는데
올라갈 수 있는데 왜 나를 안 불러주지? 왜 방송국에선 나를 모르지?
왜 사람들이 날 모를까? 왜 난 노래할 무대가 없을까?
그래서 그 우울증이 2015년까지 계속 왔었어요 15년 정도 앓았죠
폭식도 했다가 안 먹기도 했다가 그래서 살도 찌고
신경도 예민해져서 날카롭기도 했어요
-강애리자 인터뷰 中
현재 그녀는 서울을 떠나 경기도 인근으로 이사를 하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책장에는 그가 발매한 앨범들이 수북했는데 특히 그녀는 수많은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요술공주 세리, 우주소년 아톰, 마징가 제트, 플란다스의 개등 유명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00년대 초반 우연히 선 무대에서 갑자기 무대 공포증이 생기며 그 이후 10년 정도는 무대에 설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도 무대 공포증이 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 중에 있다.
2003년인가 2002년에 제가 한국에 놀러 왔는데
저녁에 오빠들이 <열린 음악회> 큰 무대를 잡아놓은 거예요
근데 리허설할 때 너무 잘했어요 제가 막 신나서 했는데
제가 오랜만에 나왔다고 맨 첫 무대로 올라갔는데
무대가 딱 열리는데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가 날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아요
그 공포감이라는 건요
지금 생각해도 제가 막 손이 떨릴 정도로 (무서워요)
그렇게 억지로 무대를 끝마치고 내려와서는
그 다음부턴 한 거의 10년? 한 10년 정도는
무대 올라가는 계단 하나라도 있으면
이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머리부터 몸이 제가 이렇게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아요
-강애리자 인터뷰 中
우울증과 무대 공포증을 이겨 낼 수 있게 도와 준 이는 현재의 남편 박용수씨 덕분이다. 처음 용수씨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 딸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긍정적으로 변화는 모습을 본 뒤 자녀들의 허락을 맡고 재혼을 하게 됐다는 그녀. 강애리자는 다시 노래를 시작하며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설 수 있는 무대가 없고, 불러주는 곳도 없어 지난해부터 1인 방송을 시작한 강애리자. 아직 구독을 하는 사람은 적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요즘도 강애리자를 찾는 곳이 있다면 인원이 적든, 장소가 어디든 달려가서 노래를 한다.
■ <분홍립스틱> 원조가수! 작은별 가족의 강애리자
다시 뭉친 가족 “작은별가족은 해체한 적이 없다“
요즘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강애리자를 위해 작은별 가족이 모였다. 분홍립스틱을 자작곡한 강인구씨가 여동생을 위해 야심차게 새 곡을 준비했다. 강인구씨는 작은별 가족 활동 당시 공연 때문에 학교를 안갈 수 있어서 그것이 가장 좋았다고 전했다.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은별 가족. 그들은 아직도 작은별 가족은 해체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작은별 가족이란 게 가족팀이기 때문에 장점도 있지만
서로의 나이 차이도 있고 음악적 견해가 달라도
가족이니까 같이해야 하는 그런 불만도 있는 거거든요
저희는 결성한 적도 없고 해체한 적도 없어요
그냥 가족이니까 같이 모여서 노래하는 거죠
-강인봉/강애리자 동생 인터뷰 中
애리자 음반 낼 때 저희 형님이 와서 색소폰도 불어주시고
막내 인봉이가 와서 기타도 쳐주고 코러스도 해주고
이렇게 채우면서 하는 거죠
-강인구/강애리자 오빠 인터뷰 中
제가 혼자 음반을 냈지만 뒤에 작은별 가족이 있는 거죠
-강애리자 인터뷰 中
28년 만에 선보이는 강애리자의 신곡 <울엄마>도 오빠 강인구씨가 동생의 재기를 위해 선물한 곡이라고 한다. 그녀의 대표곡 <분홍 립스틱>도 강인구씨의 작품.
강인구씨는 분홍립스틱을 영화 광복절 특사의 감독인 김상진 감독에서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공개됐는데, 대학 당시 만든 그 곡을 듣고 김상진 감독이 본인이 영화를 만들게 되면 사용할 수 있게 사인을 해달라고 했고, 당시엔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고 사인을 해줬는데 실제로 광복절 특사 촬영 중에 그 종이를 들고 찾아 왔다고 전했다.
제가 대학생 때 그 곡이 나왔어요
제 후배가 영화감독 김상진인데 그 노래를 듣자마자
“형 제가 나중에 영화할 때
이 노래 사용할테니까 사인해주세요“
장난인 줄 알고 사인을 해줬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걸 들고 온 거예요
“형 사인 했잖아” 쓰겠다고 해서
꼼작 없이 사용하게 됐어요
-강인구/강애리자 오빠 인터뷰 중
■ 가수 강애리자 15살 차이 배우 김민정과 40년 인연,
가수와 배우인 두 사람이 친자매처럼 지내게 된 사연
어린 시절부터 활동을 한 강애리자는 당시 활동했던 이들과 여전히 친분을 쌓고 있는데 특히 배우 김민정씨와는 40년 간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 1970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인현왕후역을 맡으며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 김민정. 두 사람 나이차이가 15살 차이가 나이지만 강애리자씨가 어릴 적부터 좋아하고 따랐다고.
나는 얘를 어려서 만났어요 나는 어른이고요
우리 동네가 한남동이었는데
얘네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온 거야
-배우 김민정 인터뷰 中
사실 오빠들과 살아서 특별히 제 물건 같은 것도 없었어요
옷도 티셔츠같이 입고 엄마가 똑같이 7벌 사 오면 같이 입고
그런데 언니네 집 가면 너무 예쁜 게 많은 거예요
하다못해 그릇부터 시작해서
학교 갔다 연습할 때 빼곤 언니네 집에 가서 사는 거예요
언니가 좀 귀찮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그때 언니를 너무 좋아했어요
-강애리자 인터뷰 中
김민정을 위해 밑반찬까지 준비해 온 강애리자. 김민정씨는 강애리자가 재혼을 결심했을 때 행여 또 힘든 시간을 겪게 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의 남편, 용수씨가 강애리자에게 너무 친절하게 잘 보살펴 줘서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저는 일단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는 노래를 좀 하고 싶고요
제 노래를 한 명이라도 좋아하고 들어주면 계속할 거고
그 한 명이 남편이 될 것 같아요
저는 늘 노래를 하고 남편은 늘 노래를 들어주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요
-강애리자 인터뷰 中
이제 다시 음악을 시작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강애리자의 모습이 4월 17일 수요일 밤 10시 마이웨이를 통해 공개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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