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룸
<모란봉클럽> 208회/20191006
2019.10.04
<모란봉클럽>
방송일시 : 2019년 10월 6일 일요일 밤 9시 10분 / 208회
출연 송춘자(평양 선전대 출신) 장나라(꽃제비 출신 여대생) 허정희(평양시보안서 여성경찰)
이수정(인민보안성 간호사) 문현지(북한 철도안내원) 나원호(국정원 30년 근무)
김철웅(북한 피아니스트) 이유미(북한 장사의 신) 김지영(김일성 종합대학)
오청성(2017 판문점 귀순) 박수애(북한 리듬체조)
/ 표진인, 성대현, 김정우
주제 : <나는 차별을 원한다!>
▶ 그들이 사는 세상! 평양 상류층만의 비밀스러운 특권?!
평양 출신 이수정은 “평양에 살다가 지방에 나가면 눈이 딱 감긴다”며 북한의 지역 격차에 대해 토로했다. 특히 평양에서 상류층만 누리는 특권 중 하나인 ‘룡성특수식료공장’은 지방 사람들의 로망이라며 428공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평양 상류층을 위한 특별서비스의 집합체라고 설명했다. 나원호는 “여기서 생산되는 물품은 김 부자와 간부들에게만 공급되는데, 공장에 들어갈 땐 무조건 출입증이 있어야 되고 위생 통과증이 있어야 된다”며 남다른 공장의 위엄을 증언했다. 문현지는 룡성식료공장에서 근무했던 지인의 말을 빌려 “들어갈 때부터 손발톱 검사를 하고, 근무 중엔 땀도 흘리지 말라고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런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는 이유는 바로 상류층을 위한 생필품뿐 아니라 식품까지 만들기 때문이다. 오청성은 “자체 제작하는 햄이 유명한데 밀가루를 섞지 않아 정말 맛있었다”며 경험담을 이어갔다. 또한 식품 중에서도 가장 귀한 건 바로 룡성 소주라고 꼽으며,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이 술은 만수무강 연구소와 협업해서 북한에서 자체 개발한 술로 도토리와 찹쌀을 주원료로 맛이 깔끔해서 고위층이나 귀빈에게만 대접하는 술이라고 덧붙인다.
이어 평양 상류층의 특권 중 하나인 ‘카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오청성은 “외화로만 결제되는 나래카드 외에도 20여 가지 된다”며 현재 북한 상류층 사이에서 사용되는 카드에 대해 공개했다. 전성카드, 금길카드, 선봉카드 등 우리나라의 체크카드와 같은 형식의 카드가 많이 생겨났지만 카드결제는 대부분 외화식당이나 백화점 같은 평양 상류층들만 갈 수 있는 곳에서만 가능해 결국 그들만의 특권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김철웅은 “정말 최고층만 쓸 수 있는 프리미엄 카드는 따로 있다”며 모란상점 카드를 언급했다. 이 프리미엄 카드는 룡성공장의 상급기관인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에서 특권층에게만 발급한 일종의 멤버십 카드로, 모란상점에서 사용한 금액만큼 포인트가 적립되고, 사용금액이 500달러가 넘으면 선물까지 준다며 요즘 평양의 젊은 층에서는 바로 이런 류의 ‘적립식 카드’가 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공개했다. 김지영은 “최근 평양 중심 창전거리의 맥주바에서 포인트 적립카드가 인기”라며 북한의 자본주의 변화의 바람을 증언해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
▶ ‘그저 평범하고 싶었어요’ 꽃제비 소녀의 기구한 인생사
꽃제비 출신의 여대생인 장나라는 평범한 게 꿈이었다며 남다른 인생사를 고백했다. 16살에 탈북하기 전까지 인민학교를 다니지 못해 김 부자의 생일조차 몰랐다는 그녀는 “국정원에서 조사할 때 아무 것도 알지 못해 애를 먹었다. 북한의 애국가도 알지 못해 국정원의 조사관이 오히려 북한 애국가를 알려줬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장나라는 “아빠의 심한 가정폭력으로 부모님이 4살에 이혼하고 엄마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당시 거주했던 대홍단에서 거주증을 빼서 함경북도 무산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경제적인 사정이 안 되어 서류를 등록하지 못하고 결국 실종 상태로 유령 가족이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정처 없이 꽃제비 생활을 하게 된 모녀는 이 집 저 집 전전긍긍하며 빌붙어 살다가 밖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자기도 했다며 고생스러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적 없이 오히려 주변의 꽃제비들을 보면서 “나는 최소한 엄마라도 있으니까 낫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버릴까봐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떼쓴 적이 없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렇게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 중 어느 날 지인의 집에 자신을 맡기고 금방 돌아온다던 어머니는 1년이란 시간이 흐를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주인집에서 엄마가 장거리 장사를 갔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다”며 애처로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1년 후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불현듯 찾아온 낯선 군인이 어머니가 보냈다며 그를 따라나섰고 무작정 함께 강을 건너 어머니와 재회하게 됐다고 밝혔다. 장나라는 “엄마는 북한과 바로 맞닿은 마을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주인집에서 일하는 북한 남자와 결혼해 임신한 상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갑작스럽게 생긴 동생과 뒤바뀐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어느 날 그녀가 지내던 움집은 무장한 중국 공안들에게 포위되고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신고를 당해 북송 당하고 어머니는 단련대에 끌려갔지만 당시 12살이던 그녀와 갓난아기인 동생은 나이 제한으로 풀려났지만 오갈 곳이 없던 그녀는 결국 어린 동생을 업고 단련대에서 생활하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이를 안쓰럽게 여긴 단련대 문지기의 도움으로 결국 어린 아이들이 있을 수 없는 단련대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단련대에서 나온 후 다시 탈북을 감행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 또다시 이별하게 된다. 중국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홀로 3년간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는 그녀는 어머니와의 기적 같은 재회만을 꿈꾸며 청도 시내로 나와 식당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이후 어머니가 동생과 함께 넘어왔다가 또 다시 북송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후 결국 막다른 길에 다다른 그녀는 7년의 중국생활을 마무리 짓고 23살에 홀로 한국에 오게 됐다.
그런데 국정원 조사 도중 예상하지 못했던 기적이 그녀를 찾아왔다고. 장나라는 “조사관이 마지막 날 너희 어머니가 한국에 있다”며 믿지 못할 말을 했다고 전했다. 알고 보니 5년 전 이미 한국에 입국했던 어머니. 어머니와 7년 만에 이뤄진 기적 같은 재회에 스튜디오가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후문. 현재는 한국에 정착해 꿈에 그리던 평범한 인생을 누리고 있다는 그녀는 하나원 수료 후 바로 대안학교를 찾아가 초등학교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1년 반 만에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한국외대에 입학해 현재 중국어와 스페인어를 복수전공하고 있다며 “평범하게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녀의 남다른 인생사는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 인생의 목표는 오직 평양! 북한판 신데렐라 스토리
회령 출신인 송춘자의 소원은 바로 평양에 입성하는 것이었다. 송춘자는 “죽으나 사나 똥 푸는 사람으로라도 평양에 살고 싶었다. 평양에 시집가서 살기 전엔 인생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의 간절했던 평양 로망을 내비쳤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위대한 수령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그 꿈을 마침내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바로 평양에 있던 사촌오빠가 17살 차의 남자 경찰을 소개시켜준 것이다. 나이 차이가 마음에 걸렸지만 평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24살 꽃 다운 나이에 결혼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평양에 입성했지만 당시 평양에서 자칫 잘못하면 지방으로 추방되는 경우가 많아 이른바 ‘공산주의 만점’ 생활을 하기 위해 매일 노력했고, 주위 사람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웃어른 존경부터 인민반 생활, 경찰 가족 모임에서 남편 우선 공대하기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못 말리는 노력파에게도 어려운 문제는 한 가지 있었다는데. 바로 평양 말씨로 송춘자는 “평양과 지방은 말씨부터 달랐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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